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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자 - 어제는 흐렸고
    시(詩)/시(詩) 2022. 9. 28. 08:54

     

    눈은 떴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물망에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는 더러

    바다 밑에서 무거웠고 무섭게 시렸다

    부풀려진 오해가 파도를 일으키고 바위에 부딪혀서

    물거품으로 흘러내려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

     

    허상이 눈을 가리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라고 속삭였다

    산사태가 난 것도 아닌데 막혀버린 경계가

    하필 절벽과 허공이 맞닿은 어름이라니

    무릎은 꺾였고 망가진 아킬레스건을 부여잡고 버둥거린다

    통증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가보지도 못한 길에서

    돌아올 일을 먼저 생각하다니

    지내보아야 아는 것들을 만날 수조차 없는 지금

     

    가난이 흐르는 마음 한 가닥을 지푸라기 삼아 외줄 하나 걸었다

    곧장 사람에게로 이어진 길이 보인다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개였다

    땅이 젖어서 더 선명해진 흙내음

    냄새가 난다 구체적이다

    (그림 박운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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