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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현 - 앵두
    시(詩)/시(詩) 2022. 9. 24. 18:40

     

    요 며칠 앵두 따러 다녔어요

    아파트 산책로 한 그루 앵두나무가 나를 잡아끌데요

    앵두가 익을 무렵인 줄 몰랐는데

    가지 찢어지게 영글어 바알갛게 쫑알거리데요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다고 뾰로통 입술을 내미네요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눈길 하나 건네지 않았겠지요

    별 볼 일없는 나 같은 사람이나

    앵두에 눈 맞추며 가슴 콩닥거리겠지요

    손가락을 디밀어 빗질하듯

    가지 밑 다닥다닥 붙은 앵두알을 훑었지요

    탱글한 앵두알에 금방 손바닥이 흥건해지는군요

    앵무(鸚鵡)들 허천나게 탐낸다는 그것을

    혓바닥에 올려 오밀조밀 궁굴려봅니다

    늦봄 한나절 잠시라도

    한 마지기 그늘에다 한 모숨 초록바람까지 더해

    늦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얕은 잠속을 자박자박 서성이다 멀어진

    당신의 발자국 소리도 다가오는 듯합니다

    저 바알간 앵두알을 삭여 앵두주를 담글까봐요

    숫돌처럼 무거운 봄날이 다 가고 나면

    당신 한잔 자시러 오실래요?

    하 독(毒)하도록 맑고

    맑도록 독(毒)한 앵두주

    앵두나무 기슭에 매달린 하늘 무심히 보듯

    무심히 한잔 자시러 오실래요?

    (그림 : Jeon 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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