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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솜 - 어떤 무렵시(詩)/시(詩) 2022. 9. 28. 08:49
바람의 살결이 만져지는 배동바지 때
태양의 수다가 잦아진다
따듯한 구름이불 몇 채 공중에 펼쳐지면
나 꽃이오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수줍은 벼꽃 속을 들춘다
조용히 격렬하게
누가 볼세라 서둘러 일을 치르는 낮거리
물방개가 봤을까
개구리도 봤겠지
꽃밥을 위해 장대 같은 미루나무 서넛
보초처럼 길가에 세워두었지
낯 뜨거운 그늘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이
가던 길 멈추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구도 모르는 일
이제부터 다닥다닥 벼 머리는 골똘해지겠지
부푸는 공중
아버지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고
그때쯤 엉덩이 펑퍼짐한 노란 주전자
논둑길 타고 흔들흔들 가까워져 온다
배동바지 : 벼의 이삭이 나오려고 대가 불룩해질 무렵.
(그림 : 김완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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