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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자 - 재개발에 내어주다시(詩)/시(詩) 2022. 9. 28. 08:51
묵은 살림 널브러진 집
돌절구 뒹구는 마당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가
윤기 잃은 마루에 구부정히 앉아 나뭇결을 쓰다듬는다
금이 간 유리 거울 모서리에 초저녁 햇살이 쨍하다
반짝임 잠깐 부서진다
담쟁이넝쿨이 먼저 울타리를 차지하고
제집이라고 서슬 퍼런 주장을 늘어놓는다
팔 남매 왁자했던 사람 소리 떠나간 자리에
감나무 모과나무가 올해도 벌레에게 몸을 내주었고
움푹 팬 옹두리에는 모기가 알을 낳아 키우는 모양
비스듬히 허리를 잡고 섰는 대문은
출입금지 띠를 두르고 굴착기 맞을 준비를 한다
이제는 그만 가시자고
슬그머니 어깨를 돌려 대문을 나서려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두드려 만든 문빗장을 잡는다
여기가 내 집이여 남의 집이여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에
좁아드는 숨구멍이 답답해 자주 가슴을 두드린다
어머니도 다음 생을 위해 오래된 몸을 허물어 가는 중이다
(그림 : 전성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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