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 슬픔은 혀가 없다

 

슬픔이 왜 말이 없나 보니 혀가 없다

그는 지금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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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가 살아온 방식에 대한 예민한 기록 혹은 지극히 외로운 해명

그는 누구인가 아니 그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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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그는 없는 듯이 살아왔다

기쁨과 배다른 형제로 태어나 멸시받으며 살았다

평소 온순한 뱀으로 조용히 기어 다니지만

내 마음이 떠나가, 따위 말에 한순간 아가리 벌려 꽃을 삼켜버리기도 했다

말했듯, 슬픔은 혀가 없다

실은 두 갈래로 갈라진 찢긴 마음뿐이다

손수건 같은 곳에 조용히 숨어 지낼 뿐이다

득달같이 달려와 환심을 사려는 가벼운 기쁨에 비할 수 있을까, 또

큰 기쁨은 구덩이를 깊이 파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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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그는 손만 잡아주어도 마음을 빼앗기는 정결하고 유순한 처자였다

기쁨이 손 내밀자 순진하게 따라나섰다가 몸을 빼앗겼다

그는 납덩이같은 몸을 일으켜 제 마음속에 몸을 던지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누가 그를 고해의 그늘에 끌고 들어가 무릎 꿇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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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아, 부르면 그도 사람처럼 돌아본다

그는 누구에게도 잘못을 한 적이 없다

(그림 : 전병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