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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 국자별 창고시(詩)/박지웅 2019. 3. 5. 09:09
초음(草陰)에는 그 계절에 쓰지 않는 별들을 모아두는 창고가 있어
드문드문 빛바랜 돌벽에 홍역 앓는 어린 살결을 달인 듯 찔레가 불긋불긋 번졌다가 지나가곤 하였다
하루는 별이 붐비는 뒷마당에 섰다가 하늘에서 창고로 옮겨지는 짐들을 몰래 풀어 본 일이 있다
별 하나와 별 하나 사이마다 몇 억 광년의 검은색
별마다 품은 동서남북이 서로 깊고 멀고멀어 닿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목덜미 당기도록 그 짐 보따리에
어깨 넣고 휘이휘이 팔을 저어보았다
별로부터 나는 얼마나 오랜 뒤의 일인지
또 당신은 별에서부터 얼마나 외딴 일인지
당신의 아름다운 천체에 넣었던 팔은 돌려받지 못하고 아득히 까마득히 꿈에서 남해로 걸어 내려왔는데
그리운 것과 그리운 것 사이에서 나는 태어났고 살았고 밥을 떴고 또
가장 따스하고 쓸쓸하였을 꿈속도 한목숨으로 다녀왔으니 이제 한줌도 그립지 않겠다
창고 위에 비스듬히 검은 것을 버리던 국자별도
초음(草陰) : 무성한 풀숲의 그늘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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