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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용 - 부치지 못한 편지시(詩)/시(詩) 2022. 5. 16. 21:25
이제서야 편지를 띄우는 것은
밤만 같던 시간들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그렁거리던 울멍이
가라앉았기 때문이지요
이제 고백하지만,
지나칠 적이면 들킬까봐 고개를 숙였음에도
건네는 인사 한 마디에 또 얼마나 흔들렸는지요
저녁 밥알에 섞이는 한숨은
또 얼마나 푸석대던지요.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열풍의 사막으로 들어서는 것
맨 몸으로 무장한 성벽 앞에 서는 것
혼돈 벗어날 비상구가
꼭 필요하다고 간구하였지요.
또 다른 집착과 구속임을 알면서도
걸어나갈수록 좁아지는 터널 저 끝.
오직 나 하나
자유롭기 위해 열망하였지요
몇 밤이고 새벽별 뜨도록 썼다 지우고
끝내는 앞마당에 발갛게 여문 감나무처럼
단지 서 있음으로 붉어지기까지,
가을 햇살처럼
스스로 내려와 젖은 벼이삭에 머무르기까지,
사랑은 물 밑으로만 흐르는 강물이었습니다
편하게 등 기대는 너른 산자락 노을 속에서
온 세상 붉디 붉게 물드는 가을을 봅니다.
이제야 편지를 부치는
강물에 드리우는 내 그림자를 보아 주시지요.(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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