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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뜨면 허리가 시리다는 건 옛말이다
밤 조경이 화려한 도시에선
보름달은 도통 할 일 없는 건달일 뿐
서울역 터미널을 전전하는 실직자일 뿐
이태백 흉내 내는 고주망태에게 다가가
소주잔 바닥에 새겨진 광고 얼굴인 양
잠깐씩 떠오르는 옛 애인인 양
윙크하다 머쓱해서 서둘러 떠날 뿐
대낮이나 밤이나 재고창고에 박힌
21세기 보름달은
바겐세일을 붙여놓아도 사가는 사람이 없다
찾는 전화 한 통 없는 방을 온종일 지키는
내 어깨나 치며 흐린 낯빛으로 불러세울 뿐
새로운 센세이션이나 이벤트도 없이
근엄한 명언이나 조언 한 말씀도 없이
한 달에 한 번 얼굴 삐죽 내밀며
멋쩍게 큰기침 한 번 다녀가는 보름달
시집간 딸내미 그리워 아파트 창문 아래
서성이다 가는 친정아버지 흉내를 낸다
돌풍과 황사 덕분에 제 빛을 내지 못하는
청매화에 목련이나 일없이 흔들어 놓고 간다
속정 건드려 놓고
허리 시큰하게 툭 발길질 하고 간다
(그림 : 조몽룡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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