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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용 - 용대리 황태시(詩)/시(詩) 2022. 5. 16. 21:42
함박눈이 퍼붓기 시작하면
강원도 인제 용대리 사람들은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진부령 고개 길에
동녘 끝 칼바람 속에 명태를 줄줄이 넌다
눈보라에 저들끼리 부딪쳐서
댕댕 맑은 종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뼈 속까지 알알이 얼다가 제 스스로
빗장 열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고통이 환희로 탈바꿈 될 때까지
매일 일렬로 들고나기를 거듭한다
끝내 살빛이 투명하게 얼비치고
껍질이 독한 윤기로 피어오를 때까지
영하 4,50도의 추위를 견뎌낼 때까지
아낌없는 시련을 받아내는 전사들,
오고가는 행인들이 발로 차든
방망이로 해장국거리로 두들겨도
더는 흔들림 없는 망부석이 되었을 때
용대리 사람들은 그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제 너희가 우리를 먹여살려야 해
돼지 머리와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린다
동상으로 피가 난 손등과 부어오른 발로
엎드려 비는 용대리 사람들 머리 위로
바다가 황금빛으로 걸어나오는 소리 들린다
명태들이 종을 달고 날개 펴는 소리 들린다
물비늘 털고 일어서는 수도승의 행렬이 보인다
(그림 : 최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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