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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필 - 압흔(壓痕)
    시(詩)/시(詩) 2022. 5. 17. 13:11

     

    개도 막걸리 한 사발이면 환한 얼굴로 웃음 짓는

    하두떡은

    스물둘에 벌교에서 섬달천으로 시집와 딸 다섯에 아들 둘 낳고 징상시럽게 여태 살고 있는데요

    남자는 농사라고 해 봤자 손바닥만 한 땅에 콩, 깨, 마늘 농사가 전부요,

    여자는 움푹 꺼진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넘자바다에 어린 꼬막이

    밤톨만큼 자랄 때까지 입에 단내가 나도록 갯벌을 갈아야 한다나

    등은 굽고 연거푸 퇴행성 관절염이 도질 때도

    한쪽 발은 널배에 몸을 맡기고

    한쪽 발로 푹푹, 빠지는 뻘을 밀고 또 밀었다지요

    참꼬막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한계가 있어 뻘밭 사이를 살짝살짝 건들어주어야 한다나

    아, 그러께 그끄러께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올 설에 하동 북천 요양병원에 덜컥 드러누웠는데요

    막걸리 몇 순배에

    소망약국 앞 장터 올 때쯤

    ― 나 좀 나 줘, 나 좀 나 줘, 나 줘……

    꼬막 비빔밥이 막 생각난다는

    하두떡의 탱글탱글한 여자만(汝自灣) 외출에 간밤

    선명하게 붉은 낙관을 찍고 있는 슬픈,

    화인(火印)이 오래오래 머물렀다는 전언

    압흔(壓痕) : 부종이 있는 근육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놓았을   누른 자리가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있는 흔적

    넘자바다 : 달천 사람들이 여자만(汝自灣)을 달리 이르는 말.

    (그림 : 박석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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