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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탕에 들어가 몸을 불린다. 열흘만 때를 벗기지 않아도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아
아들을 윽박질러 등을 밀게 한다. 때수건 가득 묻은 때를 보여주고서야 아들은 풀려난다.
아내는, 신혼시절에는 남자가 참 깨끗해서 좋다더니 요즘은 날마다 샤워하면 되었지 때를 밀
어 보들보들한 살을 도대체 누구한테 보여주려 하냐며 킁킁거린다.
밥 세끼 챙겨먹기 어렵던 시절, 아버지는 남자도 몸이 꾀죄죄하면 안 된다며 일주일에 한 번
은 때를 밀었고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때를 벗을 때마다 키도 생각도 한 뼘씩 커가는 것을
느꼈다. 칠순 무렵 아버지는 몸을 아무리 불려도 이제 때가 안 나와 야, 하며 웃으셨다.
토요일인데 학교에 일찍 가는 아들은 등 밀어주기 싫어서일까, 아들도 나처럼 때 미는 걸 좋아
하게 될까 궁금하면서도
하긴, 오십 년 넘게 몸으로 들어와 똬리 튼 욕심덩어리는 어찌하지 못하면서 몸뚱이 겉에 죽은
세포를 놓아둔들 무슨 대수일까
때 밀기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림 : 최석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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