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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찬 - 시금치 학교시(詩)/시(詩) 2022. 2. 23. 20:20
어머니는 시금치밭에 늘
앉아계시는 거로 우리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시금치라는 것이 먹어보면
아무 맛도 안납니다
그러나 김밥에라도
한번 빠져 보세요
소시지 계란 등이 들어 있다 치더라도
김밥 맛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김밥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에다가
자식들이 그렇게 되길 바랐나 봅니다
우격다짐으로 배운 게 우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시금치 밭에
노상 앉아만 계셨어요
어머니의 수업은 파란 시금치 밭
여기저기서 바람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시금치 잎사귀를 자식들처럼
그윽하게 바라보는 게 전부였지만
밭 가생이에 잔돌 탑을
수북하게 쌓아 놓는 것만 봐도
어머니가 매일 반복하는 수업이더라도
얼마나 정성들여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어머니가 교과서에 골고루 밑줄 쳐
놓았듯이 우리 형제들은 골고루 그
밑줄을 읽고 자랐습니다
밑줄에서 남을 억누르지 않는 몸가짐이
시금치처럼 올라옵니다
다들 오셔서 먹을 만큼씩만 뜯어 가세요
(그림 : 이명복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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