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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음 - 사과와 트럭시(詩)/손순미 2021. 10. 11. 10:22
트럭 위에서 사과가 잠을 잔다
한 봉지 오천 원!을 외치던 팔리지 않는 사과가
남자를 대신해서 똥파리를 대신해서
늦가을의 오후를 곤히 잔다
모처럼 사과를 벗어난 사과는
트럭도 버리고 남자도 버리고
오로지 완벽한 잠이 되어 트럭을 잔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간다
지붕 밑의 잠보다 거리의 잠이 익숙한 사과가
부드럽고 따뜻한 잠을 잔다
오후가 늘어났다 다시 짧아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트럭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바퀴를 가졌으면서
같은 곳에만 멈춰 있다
마트 사거리도 괜찮고 시장 앞 모퉁이도 나쁘지 않은데
조금만 움직여도 트럭과 사과와 남자의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사과는 딱 그만큼만 멈추어 있다
트럭도 남자도 딱 그만큼만 멈추어 있다
(그림 : 최성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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