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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미 - 거대한 밭시(詩)/손순미 2021. 3. 14. 14:15
깡마른 손 하나가
채소밭 하나를 밀고 간다
불구덩이 땡볕을 이고
오직 밭고랑을 밀고 간다
내리 딸자식만 일곱을 둔
거북 등짝 같은 할머니가
한여름 찢어대는 매미 소리를 이고
시퍼렇게 돋아나는 잡초를 밀고 간다
잡초들은 믿기지 않는 광기를 뿜어내며
할머니를 에워싼다
할머니는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지키려 한다
상추와 호박과 고구마 속에서
열무와 고추와 가지 속에서
할머니는 진저리를 치며 호미질을 한다
진저리치는 만큼 잡초들은 자란다 전속력으로 자란다
상추와 호박과 고구마와 잡초와
열무와 고추와 잡초와 할머니가
서로가 서로를 저항하면서 자란다
이런 오살할!
욕이란 욕 다 얻어먹어 가며
비로소 여름은 완성되고 있다
(그림 : 이명복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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