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음 - 밥 묵고 오끼예시(詩)/손순미 2021. 5. 17. 12:43
한적한 주택가에 슈퍼 하나가 있다 벚꽃나무 한 그
루 남편처럼 서 있고 주인은 온데간데없다 '밥 묵고 오끼
예' 신문지 한 장 찢어 붙여 놓고 그녀는 꽃놀이라도 간
것일까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그녀의 식사
는 길어지고 있다
'밥 묵고 오끼예' 봄날의 나물 같은 사투리가 그녀의
부재를 메우고 있다 나는 사이다 한 병 사러 왔다가 진
성슈퍼 아줌마 그너를 상상한다 파마머리일까, 뚱뚱할
까, 날씬할까, 테이블 위에 초록 콜라병에 벚꽃가지 하나
척, 꽂아 두고 사라진 그녀가 나는 궁금하다
'밥 묵고 오끼예' 어쩌면 미나리 같은, 냉이 같은, 씀바
귀 같은 대사 한마디 날리고 봄나들이를 선택한 그녀의
외출은 길어지고 있다 나는 봄날의 그림자처럼 길어지
고 있는 그녀의 식사를 오래 생각한다
(그림 : 이미경 화백)
'시(詩) > 손순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음 - 사과와 트럭 (0) 2021.10.11 손순미 - 거대한 밭 (0) 2021.03.14 손순미 - 벚꽃 피는 마을 (0) 2020.03.23 손순미 - 비의 검객 (0) 2020.03.23 손순미 - 자판기 (0)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