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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쓸리는 마른 갈꽃들,
부드러운 허공을 쓰다듬으며 스치는 바람이나 붙잡고 살려했더니
꿈은 가장 먼 곳에 있었다
평생 얼굴을 비비며 살아갈 곳은 딱딱한 바닥이었다
어느 촌로의 손에 뽑히는 순간, 수숫대가 모가지를 버리듯
불길한 예감에 떨었을 갈대의 꽃
박제된 시간들이 오색 끈으로 단단히 묶였다
마당 귀퉁이에서 수수비가 늙어가듯
마루와 방문턱을 넘나들며 시나브로 제 목숨을 허물었다
입술 다문 꽃술이 바스러질까
묽은 소금물에 끓고
그늘에 피를 말린 저 꽃을 낙화라고 불러볼까
꽃 때를 기다린 갈대밭이
서둘러 꽃을 버린 것은 오래전의 일,
습지에 바람이 다녀가는 것도 생의 각질을 털어내는 일이었다
허공을 쓸던 버릇으로
머리부터 사라지는 갈꽃비,
그에게 바닥이란 하늘과 같은 말이다
벽에 거꾸로 걸린 그의 생업은 머리로 걷는 물구나무 걸음이었다
누가 꽃으로 티끌을 모으려했던가
끝내 몽당비가 되어 벽에 풀칠이나 하다 버려질 저 꽃비
쓸고 닦는 생의 목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그림 : 변응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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