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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슬리퍼처럼
편하고 만만했던 얼굴이 떠오른다
슬리퍼는 슬픈 신발이다
막 신고 다니다 아무렇게나 이곳저곳에
벗어놓는 신발이다 언감생심 어디
먼 곳은커녕 크고 빛나는 자리에는
갈 수 없는 신발이다
기껏해야 집 안팎이나 돌아다니다
너덜너덜해지면 함부로 버려지는 신발이다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안개꽃같이
누군가의 배경으로 살았던
오래된 우물 속처럼 눈 속 가득
수심이 고여있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림 : 진미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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