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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 결핵보다 더 무서운 병시(詩)/송경동 2020. 9. 19. 18:19
종로2가 공구상가 골목 안
여인숙 건물 지하 목욕탕을 개조해 쓰던
일용잡부 소개소에서 날일 다니며
한 달 십만 원짜리 달방을 얻어 썼지
같은 방 친구의 부업은 타짜
한 번에 오만원 이상은 따지 말 것
한 달에 보름은 일을 다녀야 의심받지 않음
한 곳에 석 달 넘게 머물지 말 것
원칙 있던 그가 가끔 사주는
오천 원짜리 반계탕이 참 맛있었지
밤새워 때 전 이불 속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내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꼭 성공하라고
떠나는 날에야
자신이 결핵 환자라 고백했지
그가 떠난 날 처음으로
축축하고 무거운 이불을
햇볕 쬐는 여인숙 옥상 빨랫줄에 널었지
내게는
결핵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했으니, 쌤쌤
괜찮다고 괜찮다고
어디에 가든 들키지 말고
잘 지내라고 빌어주었어
(그림 : 이석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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