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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그해 겨울 돗곳시(詩)/송경동 2020. 9. 19. 18:28
그해 겨울 돗곳에 나는 사랑을 묻었다
간척지 둑을 넘어 불던 녹슨 겨울바람
수십 미터 허공 빙벽이 된 둥근 쇠관을 부둥켜안고
떨어져 죽지 않기 위해 네발로 기면서
너의 기억을 지워갔다
모닥불 가 둘러앉아 먹던 차디찬 새참
괜스레 쿵쿵 소리 나게 밟고 오르던 철계단들
H빔에 찍혀 발가락을 잃거나 아득하게 낙하하거나
그라인더 날에 눈 베여 떠나가던 동료들을 보며
몸에 배인 네 살에 대한 그리움을 덜어냈다쉬는 날이면 공사장 앞 당구장을 배회하거나
멀리 읍내 다방에 나가 너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가난한 청년 용접공과 빚더미 다방레지로 만나
우리가 나눈 사랑의 밀어들은 어디로 팔려간 것일까분노를 담아 내려치던 오함마
마음속 끝까지 지지거리며 타들어오던 용접봉
60만평 간척지에 밤이 내리면 내복바람 오스스 떨며
함바집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짤랑짤랑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
어느 곳으로도 마음 보낼 곳 없던 나는
먼 선착장까지 걸어갔다가 기진해
눈사람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일이 줄고 노임이 깎이고
태업을 하자거나 스트라이크를 하자거나
수군거리는 소리로 숙소동이 들썩거려도 다 뒷전60미터 고공 철 플랜트 난간에 서서
너의 이름을 부르던 간절한 목소리는
어디까지 가닿았는가 그 청춘의 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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