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주자 - 삼거리 능수버들시(詩)/시(詩) 2020. 5. 26. 16:11
불빛 화려한 가게들 사이에 낀
낮은 간판의 허름한 식당
작은 방을 이리 트고 저리 덧대
미로가 된 구들방에 사람이 꽉 찼다
탁자는 기름 때 절어 끈적이지만
봄비 척척하게 내리는 밤이면
슬그머니 스며들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홀짝이기에는 안성맞춤
구석자리에 엉덩이를 디밀고 앉는다
던지고 받는 말들이 지글지글 구워지는 동안
불콰해진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창밖 빗소리도 덩달아 굵어지고
굽은 손가락처럼 낡은 문지방을 넘나들며
고기 접시와 야채를 나르는 것은
십수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안주인 몫인듯
쥔장은 여전히 계산대와 한 몸
그가 천천히 일어나는 시간은
오직 고기를 썰어야 할 때
굿거리 타령 한 대목을 톱질한다
왁자지껄 소주잔 부딪히며
여기요~ 저기요
바빠지는 손놀림, 부산해지는 잰걸음
된장 추가, 야채 부탁이요
불러대는 소리도 낭창낭창 버들가지
만사 심드렁한 쥔장 팔짱 낀채
눈길은 연기에 희끄무레해진 TV 속
천안 흥타령 능수버들에 박혀있다
(그림 : 이미경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종태 - 김광석을 듣는 밤 (0) 2020.05.28 김성덕 - 첫사랑 (0) 2020.05.26 정병근 - 말의 신사 (0) 2020.05.26 노향림 - 아우라지 강을 따라가며 (0) 2020.05.26 강정수 - 항상 그 자리 (0) 2020.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