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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미 - 저녁의 시(詩)시(詩)/손순미 2019. 12. 14. 14:50
고양이 울음이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저녁보다 어두웠다
신발을 신은 울음은 모퉁이까지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골목은 먹물처럼 고요했다
어둠을 보관한 집들은 집의 입술인 창문을 열지 않았다
집의 근심은 하수구로 흘러 나왔다
수챗물이 눈물처럼 반짝였다
나뭇가지에 검은 색종이처럼 접혀 있던 새들의 깃털 터는 소리 낮게 들려왔다
밥물 잦는 소리 같았다 다시 길을 당겼다
담장의 자귀나무 연분홍 서로 몸을 부딪고 깊은 저녁을 껴안고 갔다
가로등이 흰 새알을 까는 동안 손수레를 끄는 노인이 남아있는 골목을 다 끌고 갔다
(그림 : 김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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