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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시장에 아귀 사러갔다
온 몸이 주둥아리인 아귀는
톱날 같은 이빨을 진실의 입처럼 벌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죄 지은 자의 손목을
확! 나꿔채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등등 커다랗게 벌린 입 속으로
햇살이 빨려들어간다
생선장수가 망나니처럼 칼을 들고 나와
사정없이 아귀 뱃속을 가르는데
조기, 새우, 가자미, 고등어, 오징어 등속이 나온다
바다의 것들을 모조리 잡아 삼킨 듯
뱃속에 어물전 하나 차려놓았다
먹어도 먹어도 한평생 허기에 빠져 산다는
아귀 귀신이
탐욕으로 생을 조롱했구나
죽음으로 탐욕을 고백했구나
아귀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낸 도마에
노을이 흥건한 저녁
아귀의 고해성사 한 접시 올려놓았다
한 마리 아귀찜을 먹는다
한 마리 아귀찜을 듣는다
(그림 : 강종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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