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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 맛국물을 만드는 동안시(詩)/하종오 2019. 10. 3. 12:59
눈이 내려쌓인 점심때
아들이 국수를 먹고 싶다 해서
아내가 냄비에 물을 담고
멸치와 다시마를 집어넣은 뒤
가스레인지에 얹고 딸깍, 불을 붙였다
나도 갑자기 군침이 돌아서
덩달아 국수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아내가 불을 낮추었다
식탁에 마주앉아 있던 아들이
노트북을 가져와서 켜곤
양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나는 거실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흰 눈이 덮인 논밭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입맛이 사라지지 않는 건
자식에게 해줄 일이 남아선가
젓가락질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부자간에 진작 끝났지 않는가
내 주제를 파악하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비등점에 다다른 물이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내는 냄새가
집 안에 스르르 퍼질 때
아내가 젓가락 세 벌을 딱, 딱, 딱, 식탁에 놓았다'시(詩) > 하종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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