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종오 - 혀의 가족사시(詩)/하종오 2019. 10. 3. 13:07
어린 그가 눈에 티끌이 들어가 쓰라려했을 적에
어머니는 혀끝으로 핥아 빼주었다
그날부터 눈알이 밝아져
그는 어머니가 하려던 일을
먼저 볼 수 있었다
어린 그가 벌레에게 물려 몸을 긁적였을 적에
어머니는 혀끝으로 침을 발라주었다
그날부터 한동안 온몸이 가벼워져
그는 어머니가 하려던 일을
대신할 수 있었다
어린 그가 어른이 되어 낳았던
어린 자식들이 어른이 되던 날까지
어머니한테 배운 대로
그는 혀끝으로
티끌 들어간 눈을 핥아 빼주었고
벌레 물린 몸에 침을 발라주었다
그러나 티끌과 벌레 더욱 들끓는
빈부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자식들은
그가 하려는 일을
먼저 보지도 않고
대신하지도 않고
혀를 빼물거나
혀를 끌끌 찼다
(그림 : 김경렬 화백)
'시(詩) > 하종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종오 - 조금 늦게 (0) 2023.02.23 하종오 - 아버지 생각 (0) 2020.12.24 하종오 - 열매 도둑 단풍 도둑 (0) 2019.10.03 하종오 - 맛국물을 만드는 동안 (0) 2019.10.03 하종오 - 하늘눈 (0) 201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