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명윤 - 처음처럼, 이라는 주문
    시(詩)/이명윤 2019. 9. 18. 12:08

     

    처음은 누가 나눠 줍니까
    특가 분양 구름 전단지가 하늘을 날았습니다
    처음이 싱글벙글 이삿짐 트럭 타고 갑니다
    처음 살게 된 아파트에서
    바다를 활짝 열며 아내가 외칩니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
    처음은 어떤 입술을 가졌습니까
    보자기에 싸인 아이처럼
    탄성으로 태어나는 처음의 거리에서
    오래된 얼굴이 고개를 떨굽니다
    얼마나 더 걸어야 두근두근 처음이 될 수 있나요
    처음은 어느 순간 별처럼 반짝이고
    처음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서
    처음의 그림자는 바람처럼 길어집니다
    처음을 그리워하는 힘으로
    밤하늘은 고단한 숨소리를 재우고
    머리맡 시곗바늘을 되돌려 놓습니다
    청소차는 집집마다 쌓인 표정을 수거해가고
    아침은 늘 아이 같은 얼굴로 눈을 뜨는 것인데요
    처음이 이미 눈을 감고 없는 날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이상한 주문을 외웁니다
    처음은 어느 설레는 손이 만들었습니까
    사라진 처음이 세상을 덜컹덜컹 굴렁쇠처럼 굴리며 갑니다
    처음의 기억이 올해도 동네 뒷산에 그만
    울컥, 진달래꽃을 피웠습니다

    (그림 : 설종보 화백)

    '시(詩) > 이명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윤 - 부탁해 라는 구름  (0) 2019.09.18
    이명윤 - 시치미꽃  (0) 2019.09.18
    이명윤 - 의자들  (0) 2019.09.18
    이명윤 - 감기  (0) 2019.09.18
    이명윤 - 거룩한 사무직  (0) 2018.12.1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