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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 시치미꽃시(詩)/이명윤 2019. 9. 18. 12:10
오늘도 건강한약국 앞 인도에서
도라지 파는 할매
-막 캐 온 것이여 선상님 한 소쿠리 사 주소 차비해 집에 갈랑께
행인들은 안다
박스 안에 수북할 막 캐 온 도라지들
버스가 지나가고 꽃무늬 양산이 지나가고
길고양이 하품을 끌며 지나가고
할매와 도라지는
남남처럼 앉아있다
무릎을 오므린 채 손등 위에 올려놓은 얼굴
비쩍 마른 저 도랑에 꽃이 핀다
메이드 인 산골 호미 우리 할매
개나리꽃 진달래꽃 좋아라 좋아라 웃던 얼굴
도시 한복판에 그림자로 앉아
호미는 밭에서 녹슬어 울고
호미 잡던 손엔 물 건너온 도라지
그늘 잎 띄우고,
청승 잎 띄우고,
우리 할매 늘그막에 꽃이 되었네
이 좋은 봄날, 나비도 벌도 찾지 않는
꽃으로 피었네
(그림 : 김의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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