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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문시(詩)/이명윤 2019. 9. 18. 12:18
통 기억이 안 난단다
이름을 말하셔야 재발급해 드리죠
다른 가족 분은 없으세요
홀로 사신 지 이십오 년, 아들 하나 있는데
십년 넘게 소식이 없단다
사람들이 부르던 할머니 이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아침부터 찾아와
지갑 잃어버렸다며 울상 짓던 할머니가
재발급 수수료가 비싸다며 깎아 달라던 할머니가
이름을 물어보자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는다
기억 속의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아주 어릴 적
친구들이 정답게 부르던 이름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며 애타게 부르던 이름
돌아가신 할아버지
젊은 날 어느 오동나무 아래서 두 번 세 번
손 흔들며 불렀을 이름
어느 날 문득
새처럼 훨훨 유년 속으로 날아가 버렸을까
할머니 몰래 얼굴의 검버섯 속에 꼭꼭
숨어 버렸을까
이름을 찾아 꼭 다시 오세요
한참 동안 허공을 응시하다
현관을 나서시는 할머니
언제 다시 오실까……
먼 길 가시는 할머니 머리 위로
오랫동안 새록새록
첫눈이 내렸으면 좋겠네.
(그림 : 박운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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