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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윤 - 부탁해 라는 구름
    시(詩)/이명윤 2019. 9. 18. 12:15


    그가 사무실에 떴다
    요즘 잘 지내
    늘상 묻고 싶은 말 먼저 던지는 얼굴 한 점이
    반갑다가도 서글프다
    웃고 있지만 담배 사이로 갈라지는 한숨은
    구름의 빛깔을 이내 눅눅하게 하는데
    그가 기상학적으로 뜸을 들이는 사이
    내일은 차차 흐려져 구름 많겠다는 일기 예보가
    맞아 떨어지구나 싶고
    그의 깊은 볼우물 따라 생성된 저기압의 가장자리에서
    이윽고 짙은 구름이 뜬다
    몇 년 전 전기회사 다니다 척추를 다친
    산재판정도 받지 못한 그를
    오늘도 안면에 습기로 가득 찬 그를
    거절이란 바람으로 툭툭 밀치면
    분명 끈 풀린 구름처럼 떠돌 모습을 생각하다
    차마 대번에 거절은 못하고 대신
    뭐라도 좀 해 보지 그래. 툭 한 마디 쏘고 말았는데
    자꾸 찾아와서 미안타
    그만 구부정 돌아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는
    오늘처럼 흐린 날
    노력해도 안 되는 일 있다는 거
    저 친굴 보면 다 알면서도
    배운 거나 있으면 저 나이에 힘쓰는 거 말고라도
    앉아서 깨작깨작 할 수 있는 일 있을 텐데
    이도저도 앞이 안 보이는 저 친굴 보면
    쨍하고 해 뜰 날은 유행가 가사 속에서나
    뜨고 질 일인데
    오후 늦게부터 비 내리고 퇴근 길 선술집을 지나다
    마침내 쭈르르 흘러내리던 그를 보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는가 보다, 저 구름
    거리엔 비를 피해 걷는 사람들
    어디선가 불어 온 바람, 우산을 잡아끌자
    어깨위로 추적추적 찬비가 젖어 오는데
    운이 좋아 간신히 우산 하나 붙잡고 살지만
    나 역시 구름인 날 많았다 많았다
    중얼거려도
    자꾸만 그의 눈이 글썽글썽
    달라붙는데. 

    (그림 : 박영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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