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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의 행간을 더듬다가 그만 감기에 들고 말았다
바람이 며칠 머물다 가는 동안
숲 속에 아이처럼 누워 있다
백발의 한의사가 처방해 준 눈이 내리고 내려서
중얼중얼 입술을 덮고
외로운 숲을 덮고
어지러이 흐르는 시간을 덮는다
오래된 나무가 옛 얼굴로 걸어와 이마에 손을 얹더니
무언가 말을 하고 사라졌다
숲 밖의 세상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 들려오고 하나 둘 스산한 그림자들이 몰려왔다
아무리 눈을 끌어당겨도 검은 저녁을 다 덮지 못했다
그때 어렴풋이 나를 관통한 바람이 불 같은 속내를 품은 서술임을 깨달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줄줄 쏟아지고
불완전한 감정이 펄펄 주전자의 물처럼 끓어오르고
쿨럭쿨럭 자꾸만 목에 가시가 걸리는 시(詩)를 꿈결인 듯 생시인 듯
옛이야기 읽듯
훌쩍훌쩍,
밤새 소리 내어 읽었다(그림 : 한천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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