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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 귀신이 산다시(詩)/이명윤 2018. 12. 19. 16:10
야시골 서편 오래된 폐가에
귀신이 산다고 모두들 수군거린다
거뭇거뭇 해가 지면
기이한 울음소리 들려온다며 무서워한다
어릴 적 자주 놀러 간 그 집
내력 잘 아는 나는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건넌방에 옛 동무랑 오순도순 누우면
가만히 색동 이불속 발가락 간질이던
창문 밖 쓱 긴 머리카락 드리우다 밤이면
어둑한 뒷간에 몰래 숨어
두 손 들고 히죽거리던 처녀귀신
허나 벌써 수십 년도 지난 일
지금쯤 무정하게 늙은 그녀만 남았을 텐데
관절에 힘도 없고 머리도 허옇게 새었을 텐데
침침한 저녁 문지방 넘다 소복이 걸려
문짝과 함께 나자빠지진 않았을까
흰 고무신 두 짝 가슴에 안고
기울어진 대청마루에 중얼중얼 앉아 있진 않을까
산짐승 무서워 빈 독에 숨어 뚜껑을 닫고
한 달이 넘도록 꺼이꺼이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 오늘 같은 밤에 지붕 우에 앉아
아이 추워, 아이 추워, 청승맞게 칭얼대면 어쩌나
가만 생각하니 은근 걱정되는 것인데
샛바람만 불어도 덜덜거리는 무서운 적막
부뚜막 온기가 사라지고 수도도 전기도 끊기고
택배마저 오지 않는 폐가에 남아
귀신은 도대체, 저 혼자서
무얼 먹고 살아가나(그림 : 전성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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