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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시(詩)/이가림 2019. 8. 21. 09:23
소래포구 어디엔가 묻혀 있을
추억의 사금파리 한 조각이라도
우연히 캐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셈을 슬그머니 감춘 채
몇 컷의 흑백풍경을 훔치러 갔다
가을은 서둘러 떠나버리고
미처 겨울은 당도하지 않은
서늘한 계절의 어중간
버젓이 갯벌 생태공원으로 둔갑해 있는
옛날 소금밭에 들어서자
찰칵, 찰칵, 찰칵,
사정없이 풍경을 자르는
재단사의 가위질 소리에
빼빼 마른 나문재들이 어리둥절
몸을 웅크렸다
시커면 버팀목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소금창고와
버려진 장난감 놀이기구 같은 수차(水車)가
시들어가는 홍시빛 노을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뿐
마른 뻘밭에 엎드린
나문재들의 흐느낌 소리를
여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을 베끼러 갔다가
오히려 풍경의 틀에 끼워져
한 포기 나문재로
흔들리고 말았음이여
(그림 : 최정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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