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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영 - 꽃을 전정하다시(詩)/시(詩) 2019. 7. 31. 15:29
그대 이룬 생의 빌미가 된 꽃
초입부터 단숨에 잘라내는 무지는
가위의 날카로운 칼날 탓은 아니다
살기 위해 그래야만 된다고
다짐했던 약속마저몇 번의 웃자란 가지처럼
꽃을 피운 계절이 죄가 되었다
긴 겨울 시린 눈꽃 닮고 싶던 꿈을
매몰차게 외면해야 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가 죄다
해동하기 시작한 나른한 봄처럼
기지개를 펴고 나온 농부가
환장하도록 만개한 꽃을
잘라 내야 하는 것은 숙명
상처 낸 자리가 클수록 씨알 굵은 매실이 달리듯
오로지 세상은 화사한 꽃보다
먹고살아야 하는 절박함이 클 뿐이다
꽃피는 내내 그늘처럼 찾아오는
한 해의 생을 가늠해 보아도
농부의 허기는 잘라낼 수 없다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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