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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 책 읽는 여자시(詩)/시(詩) 2019. 8. 1. 12:31
여성도서관 휴게실에선 눈먼 햇살이 그녀를 읽지
오래된 맞춤법의 틀린 오자를 모르는 늙은 사서처럼
시간은 그녀의 비문투성이 과거를 다 모른 채
그녀가 대출해간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반납해야 할 월요일과 화요일을 점검하고 있지
기억해야 할 어떤 문장을 되새김하듯 그녀는
손거울을 보며 지워져가는 입술 라인을 고치지
이렇게 낡아버려 모든 게 다 지워질 것 같은
두꺼운 책의 표지를 열면
그녀가 모르고 끼워둔
빛바랜 한숨과 그녀의 눈물이 떨어지기도 하지
도서관의자 뒤에 적힌 흰 페인트의 숫자는
세상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유일한 좌표
도서관이라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자신의 조심스런 발소리조차 들을 수 없지
그녀가 읽는 책은 어떤 독신자의 일기,
살아 있어서 늘 캄캄했던 자의 이야기 위에
그녀도 제 눈과 손을 떼어 한 겹씩 붙이고 있지
언제부터 그녀가
도서관에 꽂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누구도 그녀를 끝까지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폐관 시간이 가까워도
그녀는 일어날 줄 모르지
(그림 : 허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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