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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육 -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시(詩)/시(詩) 2019. 7. 25. 14:23

     

     

    아버지가 꼭 너만 했을 때였구나

    연보라 참깨꽃이 초롱을 켜던 여름이었다

    열한 살 어린 아버지의 손을 놓지 못한 채

    할아버진 떠나가셨단다

    생전엔 힘이 장사셨지

    용돌이네 대건이네 할 것 없이

    고향 동네 대들보란 대들보는 모두

    할아버지의 어깨를 탄 것이란다

    아무렴, 자식 사랑도 장사셨지

    장날 해거름이면

    막걸리에 취한 육자배기 가락을 좇아

    눈오는 날 강아지새끼처럼 마중을 나가면

    할아버진 어김없이 눈깔사탕에 무동을 태워주셨단다

    그날 밤은 깊도록 달디단 눈깔사탕을 녹이며

    반딧불이 호박꽃초롱을 켜고 동화처럼 잠이 들었지

    그렇게 행복했단다

    맘씨 좋으신 너희 할아버지가

    도회지서 이사온 심주사의 보증을 앉기 전까지는 말이다

    화병이 나셨던 게지 그렇게 술병도 나셨을 게다

    3년이 넘게 빚보증에 시달리어 희나리같이 여위시더니

    연자초롱 참깨꽃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메케한 모깃불 연기가 봉화처럼 피어올라

    온 동네 사람들까지 눈물 뿌리게 하던 날이 있었단다

     

    아들아

    오늘은 힘 장사 네 할아버지 26주기 기일이다

    먼저 촛불과 향을 피우고 술을 세 번 나누어 붓고

    절을 두 번 해야지

    머리 조아려 발원도 해야지

    세월의 강을 따라

    네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떠나야 하듯

    세월의 강을 되돌아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네가 되는

    신비한 마법을 익혀보자꾸나

    뿌리를 더듬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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