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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무산 - 시계
    시(詩)/시(詩) 2019. 7. 7. 22:25

     

    저건 가기만 한다

    오는 것은 알 수 없고

    가는 것만 보이는 건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

    숙명인 양 가는 뒷모습만 전부다

     

    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우리는 열차의 맨 뒤 칸에서 뒤를 보고 있다

    마치 기계노동의 습관처럼

    도무지 누가 앞에서 운전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얼굴이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린

    모든 걸 배웅하기에 바쁘다

     

    가는 것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부피에 가득 찬 실타래가

    빠져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칠 뿐이다

    그건 마치 그림자를 어둠이라고 생각하는 것

    태양을 가리기만 하면 밤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 시계는 뒷모습만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맞이하지 않고 보내기만 한다

    사냥을 떠나지도 않고 주문을 외우지도 않고

    몸에 피를 바르지도 흙을 밟지도 않는다

    메시아를 기다리지도

    내세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존재를 헌신하지도 않는다

     

    순환의 절반을 버림으로써 얻은

    이 엄청난 질주와 쾌락

    우리는 어떤 재생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

    숙명이라는 쏟아지는 별들의 시간을

    (그림 : 이금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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