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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선 - 풀잎의 등시(詩)/시(詩) 2019. 6. 27. 09:09
들소의 등인 줄만 알았다
코스모스 꽃잎 박제된 창호지문에
달빛은 어스름히 스며들고
스무 살로 뒤척이던
그 밤, 깊은 숨소리로 흔들리는 왜소한 잔등을 보았다
뭉친 어깨 힘겹게 떠받고 있는
스러질 듯한, 그 등
그 등에 살며시 맞대고 누워
숨결의 등 타고, 엄마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물컹, 헐거워진 노독들이 손에 닿는다
절망을 헤쳐내고
억척같은 삶을 살아냈던 당신
밤이면 등 휘는 소리에도
고단함 쓸쓸함 시린 맘은 등뼈 속에 감추고
실낱같은 근육들 벌겋게 깎이어도
당당한 앞모습만 보이어
언제나 나의 지붕이 되고 우산이 될 줄 알았다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골 깊은 황량함 속에, 노을이 새기는
등뼈의 문장을 제대로 보지 못한 오독(誤讀)이었다
한철 들풀처럼 말라가던
엄마의 등은 풀잎의 여린 풀등이었음을
왜 몰랐을까
(그림 : 김경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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