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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 칼국수 집 명자 아줌마시(詩)/시(詩) 2019. 6. 21. 22:30
조개가 가득 모여 앉은 냄비속
종일 출렁이던 바다가 빠져나온다
바람이 불고, 낡은 칼국수 집에는
안개가 옮겨 다닌다
3대 독자 며느리가 또 딸을 낳았다는 명자 아줌마
그녀의 몸속에는 칼들이 돌아다닌다
벽과 벽 사이 아직도 돌아다니는 칼
삐걱대는 출입문을 뒷발로 걷어찬다
30년 과부의 울화통이 담긴 걸음에
꿈틀, 냄비 속 조개가 살아나온다
낡은 탁자가 불안해 양손으로 움켜잡는다
불이 있어야만 칼을 옮길 수 있다
등 뒤, 낡은 문은 점점 기울어가고
덜 깬 잠 비벼 끄고 화병만 쌓는다
지난밤, 뜬 눈으로 보낸 건 바다를 잊지 못해서이다
요동치는 파도를 물려받은
조개가 더는 자라지 않는다
손님이 떠난 자리, 그림자만 남고
그냥 습관이었을 뿐, 끝끝내
무너지는 곳의 주인을 찾지 못한다
가슴 아래 숨긴 칼이 운다
칼을 삼킨 가슴을 허무는 일에는
끓는 칼국수만 한 것이 없다
휘휘 저어보지만, 칼은 어디에도 없다
(그림 : 전명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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