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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영 - 정동 골목시(詩)/시(詩) 2019. 6. 20. 13:11
얼마나 우쭐대며 다녔었나,
이 골목 정동 길을.
해어진 교복을 입었지만
배움만이 나에겐 자랑이었다.
도서관 한 구석 침침한 속에서
온 종일 글을 읽다
돌아오는 황혼이면
무수한 피아노 소리,
피아노 소리 분수와 같이 눈부시더라.
그 무렵
나에겐 사랑하는 소녀 하나 없었건만
어딘가 내 아내 될 사람이 꼭 있을 것 같아
음악 소리에 젖는 가슴 위에
희망은 보름달처럼 둥긋이 떠올랐다.
그 후 20년
커어다란 노목이 서 있는 이 골목
고색창연한 긴 기와담은
먼지 속에 예대로인데
지난날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늘은 그 피아노 소리조차 들을 길 없구나.
(그림 : 양종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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