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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안개 속 풍경시(詩)/시(詩) 2019. 6. 20. 12:08
깜깜한 식솔들을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아버진 이 안개를 어떻게 건너셨어요?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이 굴젓 같은 막막함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부푼 개의 혀들이 소리없이 컹컹 거려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발 앞을
위태로이 달려가는 두 살배기는
무섭니? 하면 아니 안 무서워요 하는데요
아버지 난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바람 속에서는 바다와 별과 나무,
당신의 냄새가 묻어 와요
이 안개 너머에는 당신 등허리처럼 넓은
등나무 한 그루 들보처럼 서 있는 거지요?
깜박 깜박 젖은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덧 안개와 한몸되어 백내장이 된
우우 당신의 따뜻한 눈이 보여요
덜커덩 덜컹 화물열차가 지나가요
그곳엔 당신의 등꽃 푸르게 피어 있는 거지요?
나무가 있으니 길도 있는 거지요?
무섭니? 물어주시면
아니 안 무서워요! 큰 소리로 대답할게요
이 안개 속엔 아직 이름도 모른 채 심어논
내 어린 나무 한 그루가 짠하게 자라는걸요!
나무는 언제나 나무인걸요!
(그림 : 한희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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