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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모 - 흘러라, 무심천
    시(詩)/시(詩) 2019. 6. 19. 12:49

     

    나무는 비의 하객이라 어깨를 털지 않고

    잎잎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지만

    바람 불면 가지는 공중을 할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는 건 흉도 아니지 

     

    인생 그까이꺼,

    사는 방식 다 다르니 한 판 바둑이지 뭐

    내 생은 남은 복기라도 있는지

    죽은 돌처럼 눈만 내리깐 채 기다리다가

    푸른 것을 열매로 달 줄 알아

    돋을볕 기다리던 초록도 그랬지 싶어

    나도 보고 싶었다고 기억을 익혀 본다

     

    저녁 굶은 비 저벅저벅 걸어오던 날

    시장에서 돌아오지 않던 어머니

    한숨과 허기가 눈만 깜박이고 있었고

    새벽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무심이란 강과 부엌 사이에서

    안지도 못하고 서걱거리던 갈대는

    노을이 쪽잠 든 윗목에서 떨고 있었고

     

    젖은 장작 같은 삶이 가슴에서 타는 저녁

    뒷산처럼 또 장독대처럼

    세상은 연기도 없이 슬픈 무게로 앉아 있었다

     

    나는 오리처럼 뒤뚱거리다가

    열매든 무엇이든 되고 싶어

    생에 공손한 척 눈 감고 고개를 숙였지만

     

    이제 알겠네,

    한 생이란 아픔을 끌고 가는 재미였구나

    한 방울까지 모아서

    사랑이라는 강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그러니까,

    흐르는 것들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 같이 흐르고

    길의 끝에서 새 물을 만나면 몸도 섞으면서

    (그림 : 전성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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