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란 - 오래 전에 불러보던 사소한 습관으로시(詩)/시(詩) 2019. 6. 15. 12:53
먼저 떠나야겠다
생각하니 붉은 꽃잎들이 실없이 졌다
백만 년의 사람, 간지러운 사랑은
백 일도 안 되는 말로 탑을 쌓아두고
먼 곳을 바라보던 그 눈빛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산다는 일이 그러려니 싶었는데
사라지는 것과 새로 오는 것의 사이에서 잠시
허둥거렸다
이쁘다며 지나가는 그림자들은
붉은 꽃만을 보았다
백만 년을 꿈꾸던 옛사람아
오래된 꿈을 물어 나르던 입술처럼 피어라
달싹이는 마른 꽃잎이라도 피어보아라
저 홀로 삼복 내내 피고지고 피고 지더니
시나브로 가볍게 몸을 날린다
그때, 어미 잃은 붉은머리오목눈이도 그랬으리라
서러움은 붉고 또 붉었으리라
그래도 살아봐야겠다는 쪽잠의 모색
목백일홍 흰 몸에 어룽지는 잠깐의 오수처럼
무겁게 걸려 올라오는 얼굴들
오래 전에 불러보던 사소한 이름처럼
(그림 : 설종보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남주 - 어머니 (0) 2019.06.16 안용태 - 섬진강 나들이 (0) 2019.06.16 유승도 - 찔레꽃 애기똥풀 (0) 2019.06.14 김혜천 - 실상사 해우소 (0) 2019.06.14 김대호 - 어디를 살아도 (0) 2019.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