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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 낯선 곳에서 햇살을 심다시(詩)/시(詩) 2019. 6. 12. 09:47
유월이 앞당겨 쏟아진 어느 날
햇살 열차에 실려 양주를 지나치다
들판이 소란스러워짐을 핑계 삼아
덜커덩 덕정역에 내려선다
졸음으로 구겨진 시야 앞
물 댄 논 벼 잎이 얼굴을 내밀었을 때
뙤약볕 아래 간지러운 바람과 맞서본다
황톳빛 먼지에 발이 빠지는 것쯤 예사롭다
논두렁이 놓친 기억 위로
놓아두었던 옛날이 부스스 깨어난다
잠자고 있는 수면에 찍어놓은 붓 자국이
개구리 울음소리같이 모여든다
적당히 작은 논바닥에서는
키 큰 기계음 대신 왜가리 몇 마리 서 있고
흥에 취한 노랫가락이 물 위로 떠다닌다
나는 맨발로 펼쳐놓은 화판을 걸어 다니고 싶고
둥둥 떠다니는 구름 사이에서 추억을 건져내고 싶다
땅속 깊이 스며들었던
지난여름이 우렁이처럼 걸어 나오면
하늘 또한 푸른 초원이 담가놓은 햇살주를 핥으며
한참이나 뒤로 물러서 있는 가을을 소환하고 싶다
(그림 : 이석중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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