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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밤이 오면 밤의 푸른 혀들이 파도가 되어 넘실넘실 넘어온다네
내 발목에서 부터 시작되어 이 길고 긴 혀들은 나를 핥으며 뱃살에서 울렁거리다 심장으로 온다네
그러면 나는 평행감각을 잃고 스스로 조그만 배가 되어 이 혀들을 데리고 길을 나서야 한다네
많은 것을 내주었는데도 누명과 수모는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니 나는 더 이상 안내자라는 일을 버리기로 했으나,
이곳의 서기들은 얼마 못 가 참지 못하고 새롭다 하나 뻔한 길을 얼어 있는 동궤짝처럼 내 발밑에 내동댕이치더군
살면서 죽어본 적이 일찍이 나에겐 없었다네
생의 좁은 방에 둘러앉아 있으면서도 귀신처럼 홀로 인적도 없었다네
술병을 부레로 삼아 바다 사내들과 바다로 나가보지만
내가 맞받아 던진 돌들이 다시 내게 돌아와 내 몸에 새긴 푸른 멍들을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네
지난봄엔 기선권현망수협 앞 골목에서 하룻밤 새 백발로 변한 사내를 만났다네
그 사내는 하룻밤 새 모든 게 변했다고 오랜 세월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지만
나는 요즈음 매일 처음 보는 손님들이 사실은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임이 분명함을 어떡하나
다시 바다에 밤이 오면 생선들은 꽃처럼 수면 위로 피어오르고 인간은 지리멸렬한 잠을 청하지만
잘못 딸려 온 게들이 생선궤짝을 벗어나 공판장 골목을 집게발을 높이 세운 채 주정뱅이처럼 돌아다닌다네
결국엔 나도 고래를 노래하지 못하고 친구여 그대는 나의 편지를 또다시 되돌려 보내겠지만,
뜨거운 여름 햇살을 내가 아무리 주워 내다 버려도 소용 없듯 친구여
그대가 되돌려 보낸 나의 편지마저 나에겐 그대의 기별임을 어떡하나 다시 잘 있게
(그림 : 이은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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