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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택수 -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시(詩)/손택수 2019. 4. 25. 09:10

     

    멀리 여행을 갈 처지도 못 되고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

    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디 어딨나

    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

    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

    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마흔 몇 해 동안 나무 그늘 흔들리는 데 마음 준 적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는 얘기처럼 쓸쓸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

    눈빛 하나로 한 생을 함께 하다 가지

    나뭇잎 흔들릴 때마다 살아나는 빛이 그 눈빛만 같을 때

    어디 먼 섬에라도 찾듯, 나는 지금 병가를 내고 있는 거라

    여가 같은 병가를 쓰고 있는 거라

    나무 그늘 이저리 흔들리는 데 넋을 놓겠네

    병에게 정중히 병문안이라도 청하고 싶지만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그림 : 신제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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