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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속에서 파도가 일렁인다.
동해남부선이 가끔씩 철로보다 더 가늘고 긴 여운을 남기며 지나가는 간이역.
지상에서 발톱을 다친 물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역사 가까운 초등학교 쪽에선 풍금소리가 새어나오고, 풍금소리에 맞춰 개망초 달개비 참나리 고만고만한 꽃들이
하교길에 한눈을 팔며 놀고 있다. 돌담 위에선 고양이 수염처럼 빳빳한 햇살 아래 청어가 마른다.
선로보수 작업중 잠시 머무는 동안, 잠시 머물며 줄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생두부 한 모에 잔소주를 파는 민짜집을 생각하고,
낮게 수그린 처마와 처마가 이마를 맞대고 틈틈이 손을 꺼내어 더운 음식을 주고 받는 창문들을 생각한다.
고압선이 지직지직 달 속으로 들어간다.
어부의 집에서 나온 가느다란 길 하나가 낚싯줄처럼 팽팽하게 바다를 당긴다.
바다가 먼저 신호처럼 집어등을 밝히면 응답처럼 집들도 따라 연연히 불을 켜고 둥근 불빛들이 내밀하게 속삭이며 살을 섞는 바다.
밤이면 누군가 배를 띄우리라, 지쳐가는 뭇새들이라도 쉬어가라, 수평선 위에 흐르는 불빛 하나를 내다 걸리라,
그런 믿음은 모두 저 바다 때문이다.
항아리 속에 가득 차 출렁이는 바다 때문이다.
그래,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기차도 지금은 달의 인력을 어쩌지 못하고 저렇게 푸른 바다를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달 속에서 풍금소리가 잦아든다.
물새들이 느려터진 기차를 따라오다 멀어져간다, 달빛 두 줄기만 남았다
월내역(月內驛)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월내길 7(월내리 482)에 있는 동해선의 철도역
역 위치가 바다와 매우 가까운 편이고 여름에는 임랑해수욕장으로 가는 관광수요도 존재한다.
신해운대역이 해운대 신시가지 쪽으로 이설되면서 동시에 동해남부선의 명물이었던 바다가 보이는 구간도 없어졌는데,
월내역 전후 임랑해수욕장에 접하는 구간(길천삼거리-임랑삼거리 사이)은 구 동해남부선 구간 중
거의 유일하게 남은 차량안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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