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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택수 - 강화의 사랑
    시(詩)/손택수 2017. 12. 29. 10:19


                                                                                                                                             (낭송 : 권도일)

    신촌에서 강화 가는 버스 타고 청혼을 한 게 십여 년 전이다
    상금 없는 문학상 기념 조각을 팔아 장만한 
    가락지를 끼워 준 곳, 
    김포 가까운 데 둥지 틀고 틈만 나면 찾아갔다 
    강화는 본디 섬이라서, 연육교 다리만 끊으면 언제든지
    섬이 될 수 있는 곳이라서 
    그 어디에 소라고둥 같은 집을 짓고 살자 했는데 
    그사이 강화는 조금씩 번성하여 번듯한 도시를 닮아 갔다
    늘어난 펜션과 마트와 요란한 카페들, 
    하긴 이 땅에 온 이후로 하루도 공사 중 아닌 날 없었지
    변두리를 벗어나기 위하여 저마다에게 경쟁적으로 흙먼지를 뿌렸지
    변두리였을 때도 강화는 변두리가 아니었는데 
    갯벌 위로 지는 노을 하나 만으로도 내겐 우주의 중심이었는데
    살림이 불고 적금도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점점 
    더 쓸쓸해져 가는 우리네 사랑을 닮아 간다 
    차도 집도 없던 그 시절 마트에 함께 장 보러 다닐 때가 가장 좋았다고
    장바구니 나눠 들고 걸어오던 밤길이 소풍이었다고
    그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여전히 보물 일 호라면서도
    아파트 평수와 연금과 보험료를 계산하다 시무룩해지는 섬
    우리네 사랑은 갈수록 변두리가 되어 간다 
    변두리였을 때도 사랑은 변두리가 아니었는데 
    어느새 머리에 뿌옇게 돋은 흙먼지를 서로 측은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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