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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반대쪽으로 나를 버려줘
기억이 나를 아주 잊어버리게
희미한 게 나는 좋아
빛으로 빛을 지우는 법을 알고부터
희미한 게 좋아졌어
어둠에 들어서야 내가 밝아지는
알 수 없는 나의 정체성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어
밝은 빛으로 나를 지우지만
아주 지워질 수 없는 내가 남아있다는 것이
난 너무 좋아
어둠의 눈으로 보든 빛의 눈으로 보든
나는 나니까
내 곁에 눈이 밝은 새 한 마리 띄워놓아도
나는 두렵지 않아
난 이미 광활한 우주 속에서 아주 밝은 빛을
견디고 살아남은 어둠의 사생아이니까
눈부신 빛들을 내 주위에서 지우고
그 곳에 다시 짙은 어둠을 깔아놓아도
내가 그곳에서 밝게 빛나는 것이
내 몫이 아닌 것을 이미 난 알아
빛에서든 어둠에서든 희미하든 또렷하든
변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손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야
빛으로부터 탈출해 어둠에 들었던 나를
또 다시 빛의 손으로 잡아당기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저 손의 아이러니가 궁금해
내 모습은 비록 희미해도 지금 내 몸에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흐르고 있어
프레디가 죽어서도 목청껏 부르던
저 공중의 노래
바람이 어디를 향하건, 그건 내게 아무 상관이 없어
외로울 땐 빛의 반대쪽으로 나를 버려줘
어둠이 나를 아주 잊을 수 없게
바람이 어디를 향하건, 그건 내게 아무 상관이 없어 : Queen - Bohemian Rhapsody의 노래가사중
Any way the wind blows doesn't really matter to me”를 인용.(박남희 시인)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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