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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순 - 허공 속에 던져 버린 봄 밤시(詩)/시(詩) 2019. 3. 15. 14:05
술 한 잔 들어가기라도 하면
한소리 노래방 11호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소 눈 닮은 둥근 눈망울 지그시 덮어가며
작정한 듯 조용필의 허공을 불러대던 사람,
그 사람이
배꽃 흐드러진 자리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는 밤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놓고는 허공을 헤매는 듯한 목소리로
조용필 보다 더 처연하게 두 소절이나 불러대는데,
그럴 줄 알았어, 내 그럴 줄 알았지
무작정 제 가슴만 태우던 바보 같은 사랑을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만 보던 천치 같은 사랑을
허공에다 그만 던져버리라고 그렇게도 일렀건만,
허구한 날 허(虛)한 것도 견딜 수 없는 일인데
공(空)하게까지 한 건 얼마나 잔인한 사랑 놀음인지
스쳐버린 그 날들 잊어야 할 그 날들
허공 속에 묻힌 흰소리 같은 약속 따위는
이젠 진짜 던져버릴 거라며 악을 쓰다 쓰다가 지쳐
그야말로 허공에다 놓아버렸는지 딸깍,
마지막 노랫말마저 끊어지던 봄 밤 하늘이 묽다
봄날 끄트머리에 받아든 그 사람 소식이 아스피린을 삼킨 것처럼 아릿하다
(그림 : 조은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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