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 - 먹감나무 옛집시(詩)/시(詩) 2019. 3. 16. 18:06
내가 떠나는 순간부터 그 집은
옛집이 되었다 그 집에 있던 먹감나무에게
나는 옛사람이 되었다
절구통에 고인 빗물이 썩다가 말라갔다
함부로 웃자란 나뭇가지마다
거미들이 닥치는 대로 허공을 먹어치웠다
그 집을 지나던 새들이
먹감나무 그늘을 담장 밖으로 물어 날랐지만
떨어진 풋감에는 부리를 대지 않았다
부스럼딱지처럼 박혀 있는 옹이들,
옹이의 퀭한 눈 속에
먹감나무의 생애가 고여 있었다
언제부턴가
먹감나무는 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걸 알았다
한여름 불볕에 데인 화상이라 여겼으나
가을이 오고 속병이 깊어지면서
그것이
오랜 적막이 남긴 상처라는 걸 알았다(그림 : 신재흥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성 - 해국 (0) 2019.03.17 이면우 - 밤 벚꽃 (0) 2019.03.16 한옥순 - 첫사랑 (0) 2019.03.15 한옥순 - 허공 속에 던져 버린 봄 밤 (0) 2019.03.15 김성장 - 은둔행 열차 (0) 2019.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