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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일에 힘들어 질 때
푹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값비싼 흑산 홍어가 아니면 어떠리
그냥 잘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신김치에 홍어 한 점 싸서 먹으면
지린 내음에 입안이 얼얼해지고
콧구멍 뻥뻥 뚫리는 즐거움을
나 혼자서라도 즐기고 싶다
그렇지, 막걸리도 한 잔 마셔야지
입안의 즐거움이 온몸으로 퍼지도록
한 사발 벌컥벌컥 마셔야지
썩어서야 제 맛내는 홍어처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지
한 세월 썩어가다 보면
맛을 내는 시간이 찾아올 거야
내가 나를 위로하며 술잔을 권하면
다시 내가 나에게 답잔을 권하며
사이좋게 홍어 안주를 나눠먹고 싶다
그러다 취하면 또 어떠리
만만한게 홍어좆이라고
내가 무슨 홍어좆인 줄 아느냐
내가 나를 향해 고함을 치면서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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